korea artist, Painter, Installation
일상의 빛이 그려낸 존재의 풍경
정연진(독립 큐레이터)
어스름한 저녁, 하루의 피곤함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아파트 창마다 따스한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작은 창마다 밝은 조명으로 하나 둘 세상을 비추는 모습은 묘한 위안을 준다. 아마도 이 빛은 우리에게 '드디어 무사히 집에 돌아왔구나'라는 편안함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장하윤은 이 일상적인 빛에서 숨겨진 깊은 의미를 발견했다. 그의 눈에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닌,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삶의 위로였다. 그는 현대인의 일상에 스며든 빛을 포착하며, 그 안에서 안식과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낸다. 그렇기에 그의 캔버스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인간 내면의 풍경과 외부 세계 사이의 섬세한 교감을 담아내는 매개체가 된다. 작품 속에서 보이는 빛의 변주는 하루의 순환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 감정의 스펙트럼을 시각화하며, 현대인의 내면에 깃든 고독과 갈망, 그리고 희망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창문'은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 모티프는 작가가 배 여행에서 느낀 답답함과 작은 창을 통해 얻은 해방감에서 영감을 받았다. 창은 단순한 프레임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소통 창구로 기능한다. 초기 작품에서 창은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며 현대인의 고립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하지만 최근 작품에서는 시선이 밖으로 향하면서, 소통을 통해 자아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내면까지 돌보고 위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
작가는 실험적인 색채 사용과 레이어링 기법으로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을 시각화한다. 겹겹이 쌓인 물감의 층위는 시간의 지층을 연상시키며, 그 사이로 비치는 빛은 기억과 현재, 희망과 현실이 엇갈리는 복잡한 인간 의식의 풍경을 그려낸다. 각각의 창은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르다. 마치 사람들의 삶이 겉보기에는 비슷해도 각자의 사연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표면에 남겨진 붓터치는 작품에 생동감을 더한다. 그의 붓터치는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한다. 같은 장면을 그리더라도 붓터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것처럼, 장하윤의 작품은 우리에게 같은 일상도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는 캔버스의 측면 또한 그대로 두지 않는다. 물감이 흘러내린 듯한 측면의 질감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축적을 암시한다. 전면에서 사용된 색들이 또렷이 표현된 측면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표현은 평면성을 탈피해 입체적 깊이를 더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각도에서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다. 빛이 우리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듯, 그의 작품 또한 여러 시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 장하윤은 빛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일상 속 의미를 깊이 탐구한다. 그의 캔버스에 담긴 빛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존재의 근원이자 삶의 위안을 상징하며, 창은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느끼는 감정은 마치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통해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며 느끼는 안도감과 닮아 있다. 그렇기에 관람객은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그 속에 숨은 다채로운 희망과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빛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한다.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장하윤의 예술은 우리에게 일상 속 작은 빛을 발견하는 눈을 길러주고, 그 빛을 통해 삶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202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