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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그 사이에서

하루는 크게 둘로 나뉜다. 숫자와 객관의 측면에서라면 자정이 지나면서 오전이 시작되고 정오가 지나면서 오후가 시작된다. 하지만 삶의 영역에서는 하루를 낮과 밤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구분의 기준은 무엇인가? 낮은 어디까지고 밤은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이 기준을 명시할 수 없다. 계절에 따라 밝음이 가고 어둠이 오는 시간이 변하고, 어둠은 낮을 한순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이 아니라 ‘시간’인 이 영역은 여러모로 장하윤 작가의 작품과 맥을 같이한다. 작가는 해가 저물고 많은 사람이 개인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시간, 사라지는 해와 그에 따라 그림자가 늘어지는 시간, 그리고 다시 올 낮을 위해 나의 내면을 돌보는 시간인 낮과 밤 사이를 그리고, 입체로 구현한다.

봉산문화회관의 유리 상자에서 선보이는 작품 <낮과 밤>은 이러한 이미지를 담은 회화작품과 그 뒷면을 복도식 아파트 형태의 설치물로 제작하였다. 작품의 형식은 둘이 하나이면서 하나를 둘로 나누어볼 수 있어 작품의 이름을 드러내지만, 작품의 내용은 형식에 따라 한쪽은 낮, 다른 한쪽은 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회화작품의 화면은 눈이 시린 정도의 형광주황색의 창들 사이를 회색의 배경색과 붓질이 거칠게 가로지른다. 이 색감은 마치 멀리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해가 질 때 주변 빛과 구름이 그 빛을 등지고 내보이는 그림자 같다. 이런 풍경을 서술하면 매우 정적인 순간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작품의 화면은 전혀 고요하지 않다. 감싸고 몰아치는 거센 바람 같은 붓의 흔적은 작품을 마주한 우리의 마음에 감정의 고조를 일으킨다. 이 차분하고 정적인 화면 위를 오가는 움직임의 증거, 붓의 자취는 나와 저 건물, 그 건물의 창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고 내 마음과 감정이 반응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한다.

반대편의 입체는 요즘 흔히 보기 힘든 복도식 아파트의 모습이다. 각 층의 복도도, 한 가구 단위의 형태도 반복된다. 뒷면 회화의 창들처럼 줄지은 이 모습은 작가의 주거지에서 보이는 복도식 아파트로부터 비롯되었다. 작품의 곳곳에 켜져 있는 조명은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밤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어두워질 시간이 되고 누군가 중앙에서 복도 끝으로 자기 집의 문 앞까지 가는 만큼 불이 켜진다. 이 아파트의 형태가 내가 사는 공간과 형태가 같은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나를 따라 켜지는 조명과 함께 안식을 위한 공간으로 들어서는 그 누군가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풍경에 대해 낮에 대한 위로, 내일을 준비하는 밤이라 설명했다. 우리가 평온한 낮을 보냈다 하더라도 해질녘 혹은 그 시간을 지나 저 멀리서부터 내가 돌아갈 집이 보이면, 이제 곧 고단함을 내어놓고 쉴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선다는 마음이 든다. 이 마음에 관한 생각을 작품화하게 된 출발점은 작가의 2013년 작 <밤의 정원>이다. 종이봉투에 창의 형태를 뚫고 반복된 집의 형태로 설치한 작품이 이번 전시 작품 <낮과 밤>이 되면서 한 편에서는 그 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느낌의 나무로 제작된 더 견고한 느낌의 프레임으로 나타났고, 다른 한 면에는 촬영된 종이봉투 집에서 모티브를 얻어 회화로 전환된 작품으로 나타났다. 이 작품에는 설치와 회화가 공존하고,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이 일상과 만나 확장되고 결합되어 있다. 여러 동이 함께 있는 아파트촌의 입구로 들어서며 어두워진 건물의 실루엣 사이로 간간히 불이 켜진 집들이 보이는 풍경이 나의 정원으로 들어서는 기분 같았다던 작가는 본인의 환경과 감정을 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20대 젊은 시절, 배의 창 하나 없는 가장 저렴한 하등칸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여행을 했던 작가가 작은 창 하나가 나 있는 선상의 가게에서 느낀 감정, 그 배의 목욕탕에 바다를 향해 나 있던 큰 창을 보며 한 생각들은 창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조형적 실험을 하게 하였다. 고층의 아파트, 건물이 있는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열 지은 창문들은 작가에게 빛이 들게 하고 환기를 할 수 있다는 기능을 넘어 이 창 안에 공간이 있고, 이 창이 안과 밖을 동시에 인식하게 하는 존재, 때로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흡을 편하게 하는 대상이 되었다. 즉 해소의 감각이 투사된 형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창들이 보이는 장소 중 오늘을 떠올려 어떤 것은 위안 삼고, 어떤 것은 잊고, 어떤 것은 내일까지 잠시 미루어두기 위해 낮과 밤 사이에 돌아가는 집, 많은 사람에게 집이 되는 아파트가 가장 작가의 그 감정이 극대화된 장소인 것이다.

아마도 작품의 형태는 변해갈 것이다. 창의 모양도, 건물의 형태도. 그러나 우리는 작가의 작품이 우리로부터 끌어내는 감각을 따라 형태 너머에 존재하는 어느 경계의 영역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낮과 밤 사이가 시, 분, 초가 다르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다 알듯이 말이다. 유리상자 안의 이 작품이, 하루가 낮에서 밤으로 가듯 관람하는 모든 이를 고단함에서 위안으로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

​​임경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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